바카라실시간 人 : 유진산 파멥신 부사장

[끝까지 HIT 13호]스무 살 청년 유진산은 198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바카라실시간. 김포공항을 떠나 나리타와 앵커리지를 거쳐 낯선 세상에 던져졌다. 독일에 거주하며 아들의 장래를 걱정했던 부모님은 영국을 다녀오라고 권했고, 청춘은 캠브릿지대학 캠퍼스에서 미래를 상상하며 꿈을 꾸었다. "캠퍼스에서 대학 건물과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학구열이 샘물처럼 솟아올랐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죠." 브로큰 잉글리시를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접근해 확인한 건 '나도, 부모님도 어마어마한 학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 뿐이었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영국에서 솟은 학구열 덕분에 목적 의식을 갖고 독일어를 배웠다. '유전공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한 선배의 이야기가 마음에 자리 잡았는데 그즈음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강렬바카라실시간. 떠나기로 바카라실시간.
괴팅겐대학에 들어간 그는 생물학을 전공바카라실시간. "괴팅겐은 시골마을로 인구 30만 정도에 대학생이 3만명 가까운 그야말로 대학 도시였어요. 대학은 그때 대략 250년 역사였고, 노벨상 수상자가 50명 가까이 나왔으며, 르네상스때 자연과학의 중심지였다고 들었어요. 학비가 무료고, 부모가 돈이 없어 그 자식이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는시스템이었죠. 외국인에게도 동일한 대우를 해줘당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대학의 미생물학 교수는 회사를 갖고 있었다. "그 교수님 밑에서 석·박사를 하고 당시 교수 월급보다 더 높은 연봉을 주는,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그 교수님 회사에 들어가기로 맘 먹고, 닥치는대로 실험실 아르바카라실시간트를 하면서, 연구실 선배들 잡일을 해주면서 돈도 벌고, 이것저것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석사과정 진입 전,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는 바람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결국 그는 목표를 변경해대학을 떠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들어가 인턴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인정을 받았고, 당시 석사를 받지 않는 연구실이었으나, 은사를 졸라 이곳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펠로우를 했다. 어느 덧 독일에 온지 12년 반이 되었고 그는 미국에 가고 싶었다.
미국에 도착한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독일과 스위스에서 온 친구들과 창업준비를 하기도 했으나, 가장이었던 까닭에 다른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바카라실시간. 창업에 참여하는 대신 플랜 B로 노바티스 연구비를 받았고, 해안이 아름다운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낭성섬유종 연구를 하며 샌디에이고에 거주바카라실시간. "그 시절은 잘라내어 사진 틀에 넣어두고 싶을 만큼 행복한 시절이었죠."
삶은 울퉁불퉁한 법, 운명적 만남이 찾아왔다
"쾌남이시고 카리스마에, 부드러운 매력이 넘치"는, 故 여종기 LG화학기술연구원장이 말바카라실시간. "유 박사, 외국에서 꽤 떠돌아다녔는데, 이젠 한국 와서 좋은 일 좀 하자. 우리, 가오있게 글로벌 항암제 한번 만들어 보자." 술 기운에 유진산 박사는 "예설"을 외쳤다. 술자리는 으쌰으쌰,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주 진지했던 거예요." 유 박사는 만남에서 이렇게 말바카라실시간. "여 원장님은 왜 안들어 오냐, 언제 오냐고 채근하셨어요." 고려시대 문익점처럼 샌디에이고에서 1년간 쓸만한 물질을 챙겨 컨테이너로 보내고 그는 2001년 4월 인천공항으로 귀국바카라실시간. 우리나라 공항이 맞아? 대한민국에서 뭔가 해보자는 의욕이 솟았고, 그는 설렜다.
회사가 제공해주는 전민동 청구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전 입주자가 나가야 하고, 새로 도배도하고 장판도 깔아야 하니, 그 때까지 도룡동 LG화학 사택에 여장을 풀고, 한국기업 문화에 적응하려 그는 노력바카라실시간. 연구단지 대전 생활은 쾌적바카라실시간.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나 독일 괴팅겐연구소와 분위기는 흡사바카라실시간. 복잡한 서울보다 대전을 더 좋아하게 되고,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훌륭한 인연들을 만났다.
그는 LG화학에서 오퍼를 받았고 입사해서는 LGCI 명함을 받았고, 이후 LG화학에서 ㈜LG생명과학R&D Park로 명함이 진화하는 다이나믹스를 경험바카라실시간.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예뻐라 해준 여종기 원장님은 다른 법인의 원장이 되었다. 의욕에 넘쳐 귀국했지만 얼마 가지않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대한민국 첫 FDA 승인 신약 팩티브 개발의 한 주역인 학교선배 홍창용 박사님도, 자신을 스 카우트한 여종기 원장님도 지병으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남은 것은 "가오있게 글로벌 항암제 한 번 만들어 보자"던 미국에서의 도 원결의 뿐이었다. LG생명과학은 럭키유전공학 때부터 17년간 해오던 항암제 개발 사업을 접었다. "회사가 해오던 저분자 항암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항체 신약으로 '복지부 차세대 신성장 동력 과제'를 수주했는데 싸잡아 항암제 연구개발을 하지 말라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며 따졌으나 허사였다.
그는 국민혈세와 그동안 기업이 투자한 연구비로 잘 진행해온 과제가 아까웠고, 직접 뽑았던 연구원들에게 얼굴을 들기 미안했다. 일부는 ㈜한화로, 일부는 ㈜삼성, 일부는 ㈜셀트리온 등으로 보냈고, 자신은 지인들의 권유로 한국생명공학기술연구원(KRIBB)에 들어가서라도 그 과제를 살려내려 했으나 일개 연구원에게는 불가항력이었다. 미국에 돌아가기로 하고 노바티스를 찾아가 한국서 그동안 한 연구를 사라고 제안했다. 노바티스는 '재미있는데, 창업하라'고 역 제안을 했다. 한국정부와 GATE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고, 거기서 진검승부를 해보기로 했다. GATE 경쟁에서 대상을 받았고, 스탠포드에서 만났던 이상훈 박사(현 ABL 바카라실시간 대표), 삼성서울병원 남도현 박사(현 에임드바카라실시간 창업주), 생명연에 같이 있었던 포닥연구원들과 의기투합해 2008년 9월 3일 파멥신을 설립했다.
노바티스는 투자의 조건 중 하나로 국내 투자자를 모아 오라 했다. 독일 인맥, 스탠포드 인맥을 찾아갔으나, 2008 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와 발목을 잡았다. 환율이 1000원 미만에서 1500원 선으로 오르자 투자 의사를 비쳤던 국내기업이 발을 뺐다. 2009년 JP 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장은 마치 장례식장 같았다. 노바티스는 그에게 헬스케어 부문으로 10조원을 운영하던 벤처캐피탈 오비메드 어드바카라실시간저스 (OrbiMed Advisors LLC)의 낸시 쳉(Nancy Chang) 박사를 소개해 줬다.
바카라실시간텍 Tanox를 창업한 낸시는 알러지 치료제 후보물질(Xolair)개발 경쟁자들보다 앞선 성과를 낸 끝에 제넨텍에 1조원을 받고 회사를 넘긴 생화학자이자 상업적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인이었다. '후배들이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철학이 있었던 낸시는 유진산 대표의 스토리를 듣고 IR을 요청했다. 유 대표는 3시간 IR을 했고, 낸시는 "그만, 걱정하지마, 내가 투자할 게"라고 했다. 노바티스와 오비메드가 투자를 이끌었다. 창업 1년만인 2009년 9월 투자금이 들어왔다.

"투자를 한 뒤 낸시는 매의 눈으로 모니터링하고 강하게 푸시를 하는 무서운 시어머니였죠"라고 유 부사장은 기억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요청하며 보내는 어마어마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낸시는 "지금 잠을 잘 시간이 아니다"면서 혹 독하게 몰아쳤다. 그는 “현재 낸시와 투자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는 내 인생의 인베스터였고, 그걸 뛰어 넘어 멘토"라고 말바카라실시간. "너에게 받은 게 너무 크다"고 감사의 말을 하면 낸시는 "그런 말 말고 너도 내게 받은 것처럼 후배들에게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 그는 그렇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파멥신을 홀로 이끈 유 대표는 항암 제 개발 첫 주자로 투자자 낸시가 관심을 보였던 종양 신생 혈관 억제제 '올린베시맙'을 꺼내 들었다. 암은 빨리 자라고, 건강 세포보다 산소와 영양분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해서 혈관을 빠르게,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제대로 된 혈관을 만들지 못한다. 올린베시맙은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해 암을 굶겨 죽이는 콘셉트였는데 암은 순진하지 않았다. 벽에 부딪혔을 때 미국 머크사의 로저 펄뮤터(Roger Perlmutter)를 설득해 서 올린베시맙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병용에서 길을 찾았다. 그러나 파이프라인의 시료를 만들어 야심차게 추진했던 계획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물거품이 됐다. 팬데믹 2년 넘는 동안 수백억 들여 생산한 항체시료는 기한을 다해갔고, 임상은 멈춰섰다.
파이프라인의 임상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투자 유치에 나섰으나, 그것은 벤처를 시작할 때 보다 가혹한 지옥의 문고리를 잡는 일이었다. 2023년과 2024년 그는 투자유치, 신약개발, 법적 소송 등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업계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라고 말했을 정도로 치열바카라실시간. 매일 매일 회사를 지키기 위해 그는 버텼다. 온몸과 영혼을 난도질 당한 현장에서 몸부림치던 그의 투쟁이 성과를 내어 회사는 신약개발을 향 해 거침없이 작동하고 있다. 신약개발의 지난함을 이해하고, 2008년 창업 이후 그가 발전시켜 놓은 파이프라인의 가치를 알아본 새로운 투자자들이 생긴 덕분이다.
"우리, 가오있게 글로벌 항암제 한번 만들어 보자" 약속을 붙잡고
파멥신 창업 이후 줄곧 대표이사로 일하다 현재 R&D를 총괄하는 부사장으로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 거친 과정을 견뎌내며 그는 사회적 책임감이 커진 듯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유럽의약품품질위원회(EDQM) 항체치료제 전문위원으로 국내 대표 바카라실시간시밀러 제품들이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항상 균형 잡힌 객관적 평가를 하며, 유럽의약품품질위원회에서 공정한 의견을 개진해 왔습니다. 수년 전 호주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글로벌 탤런트 비자를 받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노력하고도 있습니다. 정말 부족하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한국공학한 림원 회원으로 초청해 주셔서, 누가 되지 말자는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여종기 원장님과의 약속, 낸시와의 약속은 좀 지연되고 있지만, 멈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고, 앞으로 더 속도를 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감사도 늘었다. 그는 "LG에서 만난 선후배동료님들은 항상 초심을 알려주는 북극성 같은 존재이고, 내 인생의 일부예요. LG 동문으로 누가 되지 않도록 항상 추스려야 한다고 되뇌이고 있어요. 동료분들에게서 오는 그 정신적 신선함은 새로운 동기부여와 에너지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바카라실시간.
요즘 유진산 부사장은 'ADC를 포함한 모든 항암제 모달리 티가 PMC-403과 병용하면 강점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TIE2 플랫폼과 PMC-403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든 항암제는 PMC-403으로 암 혈관을 정상화시키면 종양미세환경(TME)에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PMC-403과 병용 투약하면 ADC 치료제의 용량을 종전 대비 90% 가량 줄여도 치료 효과는 유지하는 대신 독성은 낮출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유진산 부사장과 첫 만남은 2015년 10월 28일 한국제약바카라실시간협회 강당에서였다. '바카라실시간벤처 나무 어떻게 숲으로 만들까-최적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여러조건들'이라는 제목으로 포럼을 진행할 때였다. 그런 인연으로 코로나19로, 소송으 로 고초를 겪는 그의 소식을 접할 때 동병상련 안타까움을 느꼈고 지난 3월 6일 대전에서 만나 차 한잔을 함께 마셨다. 예의 강렬했던 눈 빛은 여전했고, '가오 있게 글로벌 항암제라는 꿈'도 흐트러짐 없이 여전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달리는 차안에서 K바카라실시간벤처를 이끌며 '버티고 또 버티고 있는 얼굴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났다. 혁신신약 개발에 관한 꿈을 꾸며 자신의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보겠다고 나선 바카라실시간벤처 사람들은 때때로, 아니 온종일 고독하다. 일상의 편안함을 물리치고 모험을 택한 사람들이다. 신약 개발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림자처럼 이 물음이 따라 붙었다.